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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변호사법상 수임 금지 조항의 의미

입력
2015.07.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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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데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과거사 관련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취급한 사건을 수임한 혐의로 변호사들을 수사했고, 지난 14일 그 수사를 마무리하며 변호사 5명을 기소하고 김희수 변호사 등 2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반성한 적도 없고 무혐의를 줄곧 주장했다. 무슨 근거로 용서하는가. 피의자가 기소해 달라고 청탁해야 하다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라며 자신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기소유예 처분은 혐의가 인정되는 피의자가 개전의 정이 보일 때 내리는 것인데, 자신에게는 첫 번째 요건이 없다는 뜻이다.

검찰이 7명의 변호사에게 적용한 법률 조항은, 변호사는 자신이 ‘공무원으로 직무상 취급한 사건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거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 제3호이다. 김희수 변호사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의문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다. 그리고 2013년 그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장준하 선생의 긴급조치 위반죄로 인한 구금과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의 대리인단에 무보수로 참가했다. 검찰은 이 대리인단 참가 행위가 변호사법에서 금지한 ‘공무원으로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의 수임’에 해당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검찰의 이러한 법률 적용은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 제3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어긋난다. 법학자들과 대한변협은 위 조항에서 규정한 수임을 금지하는 사건의 범위를, 공직 당시에 취급한 직무 내용과 분쟁의 실체가 동일한지 여부 등에 따라 판단한다. 즉 변호사가 공직 당시에 취급한 사건과 분쟁의 실체가 동일한 경우에 해당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변호사가 판사로 재직하며 형사사건을 취급했다면, 그 변호사는 해당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수임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분쟁 실체의 동일성이 사건 당사자의 동일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앞 사안의 변호사가 피해자의 해고 사건을 맡을 수는 있는 것이다.

장준하 선생의 경우로 돌아와 보면, 문제된 사안의 당사자는 동일하지만 그 의문사를 둘러싼 분쟁(의문사 진상위원회 활동)과 선생의 구금이 민주화 활동과 관련된 것인지를 둘러싼 분쟁(유가족이 제기한 소송)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누가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다투는 것과 선생이 살아서 한 활동의 성격과 목적을 규명하기 위해 다투는 것은 분쟁의 실체가 동일하지 않고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점에서 장준하 선생과 관련된 사건을 수임했다는 점만을 이유로,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검찰의 논거는 엉성하다. 검찰처럼 변호사법상 수임 금지 조항을 해석할 경우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는 자신이 다룬 사건의 당사자가 관련된 사건 일체를 수임할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은 해당 변호사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국민의 변호사 선임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이로 인해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의 공익활동마저 제한하는 것은 변호사를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 규정한 변호사법의 입법취지에도 어긋난다.

김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자신의 무죄가 형사재판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 제3호가 변호사의 수임 제한 기간을 무제한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처럼 10여년이 경과한 이후에 한 공익 목적의 사건 수임마저 처벌할 수 있는 점 역시 위헌적 성격을 띤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변호사법 제31조 제1항 제3호가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김 변호사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것이 관련 헌법소원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해야 할 이유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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